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존 웨인 게이시 (문단 편집) === 첫 번째 결혼 === 게이시는 고등학교를 제대로 졸업하지 못했으나 노스웨스턴 비즈니스 컬리지[* [[노스웨스턴 대학교]]와는 다르다.] 경영학과에 입학했고 신발회사의 세일즈맨으로 취업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게이시는 경영 능력을 인정받아 부장으로 승진했으며 그해 마를린 마이어스라는 동료 직원과 약혼했다. 결혼 이후 게이시의 장인은 아이오와주 [[워털루]]에 있는 3개의 [[KFC]] 레스토랑을 구매했다. 게이시는 그곳으로 이사해 1966년부터 장인의 레스토랑 경영을 시작했고 제법 수익이 좋았는데 연 15,000달러(2018년 기준 115,847 달러)와 더불어 식당의 수익금도 받게 되었다. 게이시는 2명의 자녀를 가졌고 게이시의 아버지는 [[아이오와]]로 찾아와 자신이 했던 신체적, 정신적 학대를 정중히 사과하며 게이시의 능력을 인정했다. 게이시는 이 시기를 '완벽한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역 청년회의소에 참여해 사람들에게 치킨을 나눠줬고 [[대령]]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할랜드 샌더스]]한테서 따 온 듯하다. 마침 경영하던 레스토랑도 KFC였고.] 청년 회의소의 부회장이 되었다. 그러나 워털루에서 청년회의소란 [[스와핑]], [[마약]], [[매춘]]과 관련되어 있었고 게이시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여러 차례 어린 소년들만을 상대로 관계를 시도했고 만약 거부한다면 농담, 도덕적 시험 따위였다고 둘러대곤 했다.[* 당시 18세 소년이었던 어느 피해자의 증언에 따르면 친구들과 함께 게이시의 집에 들렸다가 술을 많이 마신 탓에 그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게이시는 처음에는 피해자와 지하실에서 포켓볼을 치며 놀다가 포르노 영화를 보여주더니 자신에게 성행위를 해줄 것을 요구하며 머리에 총을 들이댔다고 한다. 놀란 피해자가 거부하자 게이시는 그냥 시험이었다고 둘러댔다. 그러나 피해자가 잠을 자는 동안에 그의 방에 들어와 목에 나이프를 들이대며 같은 소리를 했고 피해자가 눈물을 흘리며 거부하자 실실 웃어대며 이번에도 농담이었다고 둘러댔다고 한다.] 그러다 10대 소년들에게 저지른 성폭행이 1968년에 크게 걸려서 10년형을 선고받았는데 불과 18개월만에 풀려났다. 선고 당일 부인은 이혼을 신청했고 곧 정식으로 이혼하게 됐다. 체포 후 진행된 정신감정에서 게이시는 [[반사회성 성격장애]] 및 [[사이코패스]]적 성향을 진단받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